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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극과 함께 상생하라_별별 프로젝트 리뷰

상극과 함께 상생하라
 
김준, 전혜주, 석성석, 차미혜, <In Position>
2014. 11. 16.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
/김민정

미디어 아트와 한국무용이 만났다. 전자는 기술문명의 파편들을 미술에 도입한 금속성의 매체요, 후자는 전통적 미의식을 절제된 움직임으로 보여주는 토속성의 예술로 언뜻 상극을 이루는 듯하다. 이 의외의 만남이 도발적인 4인의 미디어아티스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이들 시각예술작가들이 외려 우리의 현재 속에서 사라져버린 한국무용의 현재적 의의를 발굴하기 위해 실험적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그러나 사실 이 보기 드문 조합은 사실상 각각이 꽤 효과적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조합이다. 첫째, 틀에 박힌 이미지 너머의 내적 에너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 자연스런 표피를 걷어내야 하기 때문이고, 둘째, 이 둘은 사실상 정중동, 동중정의 묘미에서 서로 통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한국무용은 은근하고 절제된 하나하나의 동작 속에 큰 폭의 진동과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고, 매체는 그 신기루 같은 현란한 움직임 그 자체 속에 결코 해체되지 않는 지속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면적 결합이 낳은 아쉬움
그러나 이들의 작업은 한편의 가능성과 다른 한편의 아쉬움을 남겼다. 미디어아트와 전통무용의 조합은 전통과 현대의 동시성을 확인시켜주면서 새로운 예술형식의 탄생 가능성을 알렸지만, 그 조합은 다소 외면적인 콜라보레이션에 머물러 있었기에 아쉬움이 컸다. 4인의 작가는 김준, 전혜주, 석성석, 차미혜로, 이들은 순서대로 1작품씩 선보였다. 이들의 작품들 속에는 1인의 무용수가 각각 살풀이, 즉흥무, 태평무, 진혼무를 추었으며(2명의 무용수가 번갈아 출연) 그 배경으로 이들 작가들의 미디어아트 및 설치미술이 더해져 전통의 변형을 꾀했다.

  먼저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인 김준은 <제의적 소리>라는 작품을 통해 살풀이춤을 현재화시키고자 했다. ‘살풀이’는 곧 액(厄)을 푼다는 의미로, 살풀이춤은 무속에서 파생되어 기방무용으로 발전한 춤 형식이다. 작가는 나쁜 기운을 풀어낸다는 살풀이춤의 본 취지를 현재적으로 되살리기 위해 관을 형상화한 나무상자를 오브제로 사용하고, 이 상자 속에서 우리의 현재적 종교의 양식들, 즉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의 다양한 종교의식에 직접 참여하여수집한 음원들이 흘러나오도록 했다. 그러나 흰 치마저고리에 흰 수건을 들고 추는 살풀이춤이 무대 중앙에서 별다른 변형 없이 재연되고 무대 앞부분에 위치한 나무 상자에서 제의적 소리들이 흘러나오는 이 조합은 ‘제의’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전통과 현대를 다소 피상적으로 이어붙인 것처럼 보였다. 또한 기술상의 문제가 있었는데 정작 관 형태의 나무상자 오브제는 단순한 직사각형의 형태를 하고 있어 즉각 ‘관’으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따라서 관객은 무대 위에서 단지 제의적 소리와 전통춤의 결합만을 확인할 뿐이어서 작품의 취지에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두 번째 작품은 전혜주 작가의 <이동>이었다. 이 작품 또한 살풀이 춤의 음원을 사용하여 진혼무를 선보였으며 따라서 작품의 키워드 또한 ‘제의’에 맞추어졌다. 작가는 공연시작 전 관객들이 각자의 염원을 적어 넣은 소망 메시지를 공연 중간에 스크린에 쏘아 한국무용의 제의적 성격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한편, 차미혜 작가가 선보인 마지막 작품 <몸, 남은 말들을 위하여>는 밀도 있고 섬세한 영상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염하기 위한 준비동작인 듯 망자의 몸을 닦고 단장해주는 장면들로 이루어진 영상은 망자의 넋을 달래고 산자가 다시금 살아가고자하는 염원을 담고 있었다. 이 영상이 진혼무에 더하여져서 한편의 제의를 보는 듯했다. 그러나 이 작품들 또한 각각의 예술 형식이 공고히 유지된 채로 외면적 결합에 머물러있음으로 인해 아쉬움을 남겼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전통을 해체하고 현대의 매체와 재결합하겠다는 이들의 야심찬 포부는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한계를 노정하게 되었나? 답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전통은 이미 해체적이다
전통은 현재적인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전통을 현재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전통을 현재화시키겠다는 단순한 의지를 버리고 내가 나의 몸으로 전통 속에 들어가는 데에 있다. 사실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인 김준 작가는 공연 제목인 <In Position>을 라틴어 ‘in situ’에서 따왔다고 했다. ‘in situ’는 ‘제자리에’라는 뜻인데 작가는 특별히 이 어구의 뜻을 ‘제자리에서 계속 변화되면서 되풀이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니체의 영원회귀마저 연상되는 이 어구는 사실 우리의 삶 자체를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사실상 그 변화의 순간들은 영원히 반복된다. 한국무용이 하나의 삶을 산다면 그 또한 변화의 순간들을 반복하고 있을 터. 그렇다면 한국무용을 현재화시킨다는 것은 한국무용 안으로 들어가서 그 내부에서 변화의 핵을 되짚어내어는 것일 것이다.
 
세 번째 작품 <태평무>를 선보인 석성석 작가는 이 같은 현재화에 다가선 것으로 보였다. 태평무는 왕 또는 왕비 복장을 한 무용수가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기리며 추는 춤으로 섬세하면서도 절도 있는 동작이 특유의 장중함과 어우러져 흥과 멋이 일품인 전통무용이다. 특히 장단이 급격한 변화를 이루면서 겹걸음, 잔걸음, 무릎 들어 걷기, 뒷꿈치 꺾기 등 현란한 기교의 디딤새가 화려함을 더한다. 이러한 태평무를 두고 석 작가는 묻는다. 과연 지금 우리는 태평성대를 기원할 수 있는가? 지금 우리에게 태평무는, 태평을 가장한 거짓 같은 현실을 고발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미디어는 적극적으로 전통무용의 핵으로 파고든다.

태평무는 사실 태평하지만은 않다. 사실 전통무용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해체적이다. 작가는 이러한 태평무 본연의 해체적 성격을 최대치로 증폭시키는 방편으로 미디어를 사용한다.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분절적인 이미지들, 무용수를 동시적으로 포착한 이미지는 약간의 시차를 가지고, 그러나 점차 큰 폭의 시차를 가지고 사방에 쏘아지는가 하면 마치 방송사고라도 일어난 듯 일순간 이미지와 무용 모두가 정지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무대 위에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현실이 가장 확실한 거짓으로 전환된다. 그것으로 전통의 무용과 현대의 미디어는 서로의 내부로 깊숙이 침투하여 핵을 건드리고 그렇게 상대를 해체하면서 오히려 그 본연의 미적 가치가 보다 분명히 살아나도록 했다.
 
1+1 vs 1-1
새것과 옛 것, 보이는 것과 움직이는 것의 만남에는 필히 불협화음의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김준 작가는 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작고 큰 어려움을 겪었음을 호소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변화를 거부하는 전통무용계의 장벽이었다. 중년층의 무용가 이순림, 원유선이 본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이들 무용가들은 완결된 무용형식에 변화를 가하는 것에 적잖은 두려움을 느꼈다. 이들의 주요한 관객인 전통무용계가 변화를 수용하는데 인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을 변형시키거나 의상 등 기타의 조건에 변화를 가하는데 큰 제약이 있었다. 또한 뉴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시각예술가들이 공연장에서 작업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공간의 변형과 뉴미디어를 사용하는 데에 필요한 기술적인 요청사항에 공연장측 책임자들이 그리 협조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시도된 바 없는 이처럼 새로운 공연 형식, 네 명의 서로 다른 작가들이 완전히 다른 장르의 예술가와 긴밀한 협업을 이루는 것은 단기간에 이루기에는 벅찬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프로젝트가 못내 고마운 것은 아직 아무도 시도한 바 없는 그 상극의 상생을 기도했고, 전통의 유의미한 현재화에 크게 한 걸음 다가섰기 때문이다. 특히 석성석 작가의 작품은 살아있는 시선을 통해 태평무에 내재된 해체적 요소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한국무용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이고 있다. 죽어야 산다는 사실이 전통의 현재화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김민정 / 현상학과 프랑스 현대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감성에 진정한 자기 비판적 능력이 있다고 믿어 지속적으로 예술과 학의 경계에 있고자 한다. 현재 메를로-퐁티의 몸 및 살 개념을 중심으로 우리의 자연스럽고도 낯선 삶 속에 철학적 반성이 움트는 경험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출처]
상극과 함께 상생하라: 김준, 전혜주, 석성석, 차미혜, <In Position> /김민정  
http://blog.naver.com/ggcfart/220227524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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